보험설계사는 왜 존재하는가
보험 업계에는 오래된 말이 있다. "보험은 사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것이다." 라면이나 휴대폰은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가서 사지만, 보험은 누군가 찾아와 이야기를 꺼내야 비로소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십만 명의 보험설계사가 있고, 보험료의 적지 않은 몫이 판매에 쓰인다. 이 장은 그 말이 정말인지, 왜 그런지를 숫자로 따져 본다. 그리고 설계사가 실제로 주는 가치와, 수수료 구조 때문에 생기는 이해상충을 함께 저울에 올린다. 결론은 "설계사는 필요 없다"도 "설계사를 믿어라"도 아니다. 어떤 일에서는 설계사가 값을 하고, 어떤 일에서는 혼자 하는 편이 낫다. 그 경계를 긋는 것이 이 장의 목표다.
- 사람들이 큰 위험을 스스로 대비하지 않는 이유(드문 위험의 과소평가, 현재 편향, 미루기)를 시뮬레이터로 확인하고 보장 공백의 크기를 본다.
- 상품을 직접 비교하는 데 드는 시간과 이해 비용을 계산해, 혼자 고르기와 맡기기의 손익분기를 찾는다.
- 전속설계사·GA·방카슈랑스·TM·CM·비교 플랫폼의 비용, 상담 깊이, 상품 범위, 책임 소재를 비교한다.
- 설계사의 가치(니즈 환기·설계·관리·청구 지원)와 이해상충, 그리고 신뢰재 시장에서 평판과 감독이 하는 역할을 이해한다.
- e-클린보험서비스와 질문 목록, 경고 신호로 좋은 설계사를 고르는 법을 익히고, 설계사라는 직업의 구조를 본다.
보험은 왜 '팔려야' 하는가
2장에서 보험이 가장 빛나는 곳은 드물지만 한 번 일어나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라는 것을 봤다. 문제는 바로 그 "드물다"는 성질이 사람의 머리와 잘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행동경제학은 보험을 스스로 사지 않게 만드는 습관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 드문 위험의 과소평가. 주변에서 본 적이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진다. 32세 남성이 20년 안에 암을 진단받을 확률은 이 책의 교육용 모델로 약 7.7%다. 열세 명 중 한 명꼴인데, 대부분은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확률을 머릿속에서 줄여서 느끼는 정도를 여기서는 확률 체감 배율이라고 부른다.
- 현재 편향(Present bias). 보험료는 오늘 확실하게 나가고, 보험금은 언젠가 불확실하게 들어온다. 사람은 지금의 확실한 손실을 미래의 불확실한 이득보다 훨씬 크게 느낀다. 미래 가치에 곱해지는 할인 계수를 β라고 쓴다. β = 1이면 미래를 지금과 똑같이 대하고, β = 0.5면 미래의 이득을 절반으로 깎아서 느낀다.
- 미루기(Procrastination).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약관을 읽고, 비교하고, 건강 고지를 하는 귀찮은 일은 "다음 달에" 하기 쉽다. 그 사이에 병이 생기면 더는 같은 조건으로 가입할 수 없다(4장).
이 세 가지를 하나의 부등식으로 쓰면, 한 사람이 보험을 스스로 사는 조건은 이렇다.
아래는 32세 200명의 마을이다. 각자 큰 병(여기서는 암)에 걸려 소득과 치료비로 5,000만원을 잃을 위험을 안고 있고, 사람마다 위험의 크기와 위험 회피 정도가 다르다. 보험료는 평균 기대손실에 30%를 붙인 값(20년 동안 월 약 2.1만원)이다. 먼저 확률 체감 배율과 현재 편향을 바꿔 가며 가입 의향이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본다. 그다음 '미루기'를 켜고 20년을 돌려, 병에 걸린 사람 가운데 보장이 없는 사람이 몇 명인지 센다. 마지막으로 '설계사가 니즈를 환기한다'를 켠다.
스스로 사는 사람 vs 실제로 위험한 사람
시뮬레이터가 보여 준 것은 "보장 공백"(Protection gap)이 단순히 돈이 없어서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험료를 낼 형편이 되는 사람도 위험을 작게 느끼고, 미래를 깎고, 미루다가 보장 없이 병을 만난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와 가입하는 사람은 평균보다 위험한 사람에 치우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4장의 역선택과 같은 모양이다. 누군가 찾아가서 평균적인 사람에게도 위험을 보여 주고 오늘 결정하게 만드는 일, 즉 판매가 이 두 문제를 동시에 줄인다. "보험은 팔리는 것"이라는 말의 경제학적 근거가 여기 있다.
그런데 같은 시뮬레이터는 판매의 그림자도 보여 준다. 체감 배율을 1보다 크게(1.5) 올리면 실제 위험보다 크게 겁먹은 사람들까지 가입한다. 니즈 환기가 지나쳐 공포 마케팅이 되면 필요 없는 보장, 과한 금액이 팔린다. 위험을 '정확하게' 보이는 것과 '크게' 보이는 것은 다르다. 이 차이가 이 장 후반의 이해상충 이야기로 이어진다.
탐색 비용: 혼자 고르는 데 드는 시간
보험이 팔려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고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암보험'도 회사마다 진단비 정의, 유사암 범위, 감액 기간, 갱신 조건, 해지환급금 구조가 다르다(5장). 상품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설계서와 상품설명서를 읽고, 약관의 지급 사유를 찾아보고, 내 상황과 맞춰 보는 데 한두 시간은 든다. 비교 대상이 늘수록 더 좋은 상품을 고를 가능성은 오르지만, 드는 시간도 그만큼 는다.
경제학은 이것을 탐색 비용(Search cost)이라고 부른다. 탐색 비용이 클수록 사람들은 비교를 덜 하고, 첫 번째로 권유받은 상품을 그대로 산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시장에 상품이 40개 있을 때, 그중 몇 개를 직접 비교할지를 고르는 문제다. 상품마다 같은 예산에서 주는 보장의 가치가 다르다(평균적인 상품을 0으로 두고 10년 동안의 차이를 돈으로 환산했다). 혼자 비교하는 사람은 상품의 진짜 가치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이해도가 낮을수록 잡음이 크다.
그래프 위의 손잡이를 좌우로 끌어 비교할 상품 수를 바꾼다. 그다음 시간 가치와 상품 이해도를 바꿔, 금색 선(설계사에게 맡겼을 때)과 파란 곡선(혼자 골랐을 때의 순가치)이 어디서 엇갈리는지 본다.
몇 개를 비교할 것인가: 혼자 고르기 vs 맡기기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시간이 귀하고 보험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잘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비용이 싸고, 보험을 잘 알고 시간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비용이 비싸다. 설계사가 존재하는 두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수십 개 상품의 약관을 이미 읽어 둔 사람에게 비교를 맡기면, 한 사람 한 사람이 같은 공부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금색 선은 설계사가 성실하고, 수수료 쪽으로 '약간만' 기운다는 가정 위에 있다. 그 가정이 깨지면 금색 선은 내려간다. 이것도 뒤에서 다시 다룬다.
판매채널 지도
보험이 가입자에게 도착하는 길을 판매채널(Distribution channel)이라고 한다. 같은 보험회사가 여러 길로 상품을 팔고, 길마다 비용과 상담의 깊이가 다르다.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한다. 전속설계사는 한 보험회사에 소속되어 그 회사 상품만 판다. GA(General Agency, 법인보험대리점)는 여러 보험회사와 위탁 계약을 맺고 여러 회사 상품을 함께 파는 판매 전문 회사이고, 도윤이 여기 소속이다. 방카슈랑스(Bancassurance)는 은행 창구에서 보험을 파는 것, TM(Telemarketing)은 전화 판매, CM(Cyber marketing)은 보험회사 홈페이지나 앱에서 직접 가입하는 다이렉트 채널이다. 비교 플랫폼은 여러 회사의 상품을 한 화면에 비교해 보여 주고 가입을 연결하는 온라인 서비스로, 규제 범위 안에서 시범적으로 넓어지고 있다(2026년 기준).
| 채널 | 판매비용 | 상담 깊이 | 상품 범위 | 잘못 팔았을 때 책임 |
|---|---|---|---|---|
| 전속설계사 | 큼 | 깊음(대면, 장기 관리) | 한 회사 | 보험회사가 직접 책임(설계사는 회사의 모집인) |
| GA 소속 설계사 | 큼 | 깊음(대면, 여러 회사 비교) | 여러 회사 | GA와 보험회사가 함께(GA에도 배상 책임과 내부통제 의무) |
| 방카슈랑스 | 중간 | 얕음~중간(창구 직원) | 은행이 제휴한 회사, 주로 저축성 | 은행(판매사)과 보험회사 |
| TM | 중간 | 중간(전화, 녹취) | 한 회사 또는 대리점 상품 | 보험회사·대리점, 통화 녹취가 근거 |
| CM(다이렉트) | 작음 | 얕음(화면 안내, 상담 채팅) | 한 회사 | 보험회사. 다만 고르는 판단은 가입자 몫 |
| 비교 플랫폼 | 작음~중간 | 얕음(비교 정보 중심) | 제휴한 여러 회사 | 플랫폼·보험회사, 범위는 제도에 따라 다름 |
한 가지 흔한 오해가 있다. 같은 보험회사의 같은 상품이라면 전속설계사에게 사든 GA에서 사든 보험료는 같다. 보험료는 상품마다 정해지기 때문이다. 채널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것은 채널마다 다른 상품을 팔기 때문이다. CM 전용 상품, TM 전용 상품처럼 판매비용을 낮춰 설계한 상품이 따로 있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같은 보장을 채널별 전용 상품으로 만들었을 때 보험료가 어떻게 다른지를, 이 책의 엔진에 채널별 사업비 가정을 넣어 계산한다. 상품 종류를 바꾸고, 가입 나이를 움직여 본다.
같은 보장, 채널별 보험료와 상담 깊이
이 책의 가정에서는 어느 상품이든 다이렉트 쪽이 10% 남짓 싸고, 보험료가 큰 계약일수록 차이 금액이, 납입기간이 짧을수록 차이 비율이 커진다. 반대로 상담 깊이 점은 거꾸로 줄어든다. 실제 시장에서는 회사마다 사업비와 심사 기준이 달라 대면 상품이 더 싼 경우도 있으니, 이 차이는 '경향'으로만 받아들인다. 표의 마지막 칸도 함께 봐야 한다. CM으로 가입하면 고지 항목을 혼자 읽고 답해야 하고, 보장이 내 상황에 맞는지 판단하는 것도 내 몫이다. 고지를 잘못 해서 나중에 보험금이 깎이면 그 손실은 몇 년치 보험료 차이를 순식간에 넘는다. 싼 길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싸다.
설계사가 주는 가치
판매비용만 보면 설계사는 비싼 중개인이다. 하지만 설계사가 하는 일은 서명을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좋은 설계사의 일은 네 단계로 나뉜다.
니즈 환기는 앞의 첫 시뮬레이터에서 본 것이다. 사람들이 작게 느끼는 위험을 제 크기로 보이게 하고, 결정을 미루지 않게 한다. 설계는 여러 계약을 겹치지 않게 조합하는 일이다. 지우의 서랍에서 일상생활배상책임이 두 번 들어 있던 것처럼(12장) 혼자 가입하면 중복과 공백이 함께 생긴다. 계약 관리는 고지 항목을 제대로 답했는지 점검하고, 갱신과 납입을 챙기고, 결혼·출산·이직 같은 변화에 맞춰 보장을 고치는 일이다. 청구 지원은 사고가 났을 때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빠짐없이 찾고 서류를 챙기는 일이다.
네 번째 가치는 숫자로 보기 쉽다. 사람들은 자기 보험이 무엇을 보장하는지 잊는다. 소액 실손 청구는 귀찮아서 넘기고, 수술 특약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수술비를 청구하지 않는다. 아래는 한 사람의 20년이다. 위쪽 타임라인에 일어나는 청구 사유가 떨어지고, 채워진 점은 받은 보험금, 빈 점은 놓친 보험금이다. 아래 막대는 20년 동안의 기대값이다. '혼자'와 '설계사 도움'을 번갈아 누르고, 혼자 챙기는 정도와 실손24 사용 여부를 바꿔 본다.
20년 동안 놓치는 보험금
결과는 생각보다 담담하다. 평균적인 사람에게 청구 지원의 기대 가치는 판매비용과 비슷한 크기이고, 청구 전산화가 넓어질수록 줄어든다. 청구 지원의 진짜 가치는 평균이 아니라 꼬리에 있다. 큰 병이나 사고를 겪었을 때 어떤 계약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진단서에 무엇이 적혀야 하는지, 보험사가 지급을 미루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17장)를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평소의 기대값보다 큰 의미가 있다. 다만 그 가치는 설계사가 그때까지 일을 계속하고 있어야 받을 수 있다. 이 장 끝에서 이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것을 본다.
이해상충과 신뢰재
설계사의 보수는 대부분 보험회사가 주는 모집수수료다. 수수료는 대개 월 보험료에 비례하고, 상품마다 배수가 다르다. 그러면 설계사에게는 고객에게 가장 맞는 상품보다 수수료가 큰 상품을 권할 유인이 생긴다. 이것이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이다. 설계사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보수 구조가 그렇게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이해상충이 특히 까다로운 이유는 보험이 신뢰재(Credence good)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상품을 품질을 언제 알 수 있느냐로 나눈다. 옷이나 과일은 사기 전에 보고 고를 수 있다(탐색재). 식당 음식은 먹어 봐야 안다(경험재). 그런데 자동차 정비, 의료, 법률 자문, 금융 자문은 써 본 뒤에도 그 조언이 좋았는지 알기 어렵다. 정비사가 "이 부품을 바꿔야 한다"고 할 때 정말 필요했는지 손님은 끝내 모른다. 보험 상담도 같다. 권유받은 상품이 최선이었는지는 수십 년 뒤 사고가 났을 때나, 아니면 영영 알 수 없다.
품질을 확인할 수 없는 시장에서는 정직한 판매자가 손해를 볼 수 있다. 정직한 조언과 수수료 위주의 조언이 손님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데, 수수료 위주의 조언이 돈을 더 벌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을 지키는 장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평판이다. 소개와 후기, 설계사의 판매 이력 공개가 품질을 간접적으로 보이게 한다. 다른 하나는 감독이다. 적합성·설명의무 같은 판매 규칙을 두고, 위반을 적발하면 제재한다.
아래는 설계사 60명의 시장이다. 파란 점은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권하는 설계사, 빨간 점은 수수료가 큰 상품을 권하는 설계사다. 해마다 더 많이 번 쪽의 방식이 퍼진다(새로 들어오는 설계사는 반반이다). 처음에는 그대로 재생해 보고, 평판 가시성과 감독 강도를 바꿔 시장이 어디로 가는지 본다.
신뢰재 시장: 정직한 설계사는 살아남는가
세 개의 손잡이는 모두 현실의 제도와 연결된다. 평판 가시성은 설계사의 불완전판매 이력과 계약 유지율을 공개하는 제도, 소개 문화, 상담 후기에 해당한다. 감독 강도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판매 원칙과 금융감독원의 검사·제재다. 수수료 격차는 상품별 수수료 배수와 시책이다. 셋 중 무엇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함께 움직일 때 시장이 정직한 쪽으로 기운다. 각 나라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려 했는지 보면 쉬운 답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좋은 설계사를 고르는 법
신뢰재 시장에서 가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평판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다. 다행히 공개된 정보가 있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운영하는 e-클린보험서비스에서는 설계사의 이름과 등록번호로 소속, 경력, 모집 이력, 불완전판매 건수와 비율, 그 설계사가 판 계약의 유지율 같은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명함을 받으면 한 번 찾아보는 것만으로 시뮬레이터의 '평판 가시성'이 올라간다.
질문보다 더 확실한 것은 경고 신호다. 아래 말을 들으면 한 걸음 물러선다.
| 들은 말 | 무엇이 문제인가 |
|---|---|
| "지금 보험은 다 해지하고 이걸로 갈아타세요" | 승환 권유. 기존 계약을 깨고 새 계약을 맺게 하는 것이다. 해지 손실, 새 사업비, 높아진 나이의 보험료, 새 면책·감액 기간을 모두 고객이 진다. 비교 안내 없이 권하면 위법이 될 수 있다(15장). |
| "이달 말이면 이 상품 없어집니다", "다음 달부터 보험료 오릅니다" | 절판 마케팅. 개정 전 막차라는 말로 결정을 서두르게 한다. 사실인 경우도 있지만, 서둘러야 할 이유는 대개 판매자에게 있다. |
| "무조건 이득이에요", "은행 적금보다 낫습니다" | 보험은 보장을 사는 상품이다. 환급률이 높은 상품은 그만큼 오래 묶이거나 보장이 줄거나 해지하면 손해가 크다(11장). |
| "고지는 안 하셔도 돼요",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됩니다" | 고지의무 위반의 책임은 가입자에게 돌아온다. 나중에 보험금이 깎이거나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4장). |
| "서명은 여기, 여기만 하시면 됩니다" | 자필서명과 중요 사항 설명은 가입자를 위한 절차다. 빠지면 품질보증해지 사유가 되지만, 애초에 내용을 모른 채 가입한 것이 문제다. |
반대로 좋은 신호도 있다. 지금 가진 보험 중 유지할 것을 먼저 말해 주는 설계사, 권하지 않는 상품의 이유를 말해 주는 설계사, 다이렉트가 더 싼 경우를 먼저 알려 주는 설계사, 상담 기록과 비교 안내 자료를 남겨 주는 설계사다. 이들은 수수료를 덜 받는 선택을 고객 앞에서 보여 준다. 신뢰재 시장에서 그보다 강한 신호는 드물다.
설계사로 일한다는 것
설계사는 보험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대부분 회사나 GA와 위탁 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다. 이를 위촉이라고 한다. 설계사가 되려면 정해진 교육을 받고 협회가 주관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해 등록해야 한다. 시험은 생명보험, 손해보험, 제3보험(질병·상해·간병처럼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중간 영역)으로 나뉘고, 투자 성격이 있는 변액보험을 팔려면 별도의 자격(변액보험판매관리사)이 더 필요하다. 등록 뒤에도 정기적인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수입은 대부분 판매한 계약의 수수료에서 나온다. 고정급이 거의 없거나 작고, 신입 시기에는 회사가 일정 기간 정착 지원금을 주는 경우가 많다. 수수료는 계약 초기에 크게 나오지만 고객이 일찍 해지하면 돌려내야 한다. 이 구조가 설계사의 행동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15장에서 자세히 본다.
이 직업의 가장 큰 특징은 이탈이 많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족·친구·지인에게 가입을 권하고, 그 인맥이 바닥나면 새 고객을 찾지 못해 떠나는 일이 흔하다. 신입 설계사가 1년 넘게 남아 있는 비율을 13월차 정착률이라고 하는데, 업계 전체로 보면 낮은 편이다(회사·채널별 수치는 업계 통계로 공개된다). 이것은 설계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설계사가 떠나면 그가 판 계약은 담당자가 없는 고아계약이 된다. 아래에서 신입 100명이 3년 동안 어떻게 줄어드는지와, 그동안 판 계약 중 고아계약이 되는 몫을 본다. 그래프 위 세로선을 끌어 시점을 고르고, 이탈률을 바꿔 본다.
신입 설계사 100명의 3년과 고아계약
고아계약이 되었다고 보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보험회사나 GA가 다른 담당자를 배정하고, 청구는 언제든 보험회사에 직접 할 수 있다. 하지만 새 담당자는 그 계약을 판 사람이 아니라 받을 수수료가 거의 없다. 관리가 소홀해지거나, 반대로 새 담당자가 "이 오래된 보험 정리하시고…"라며 승환을 권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오래 일할 설계사를 고르는 것, 그리고 담당자가 바뀌어도 내 보험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둘 다 중요하다.
지우네 상담 노트: 도윤의 입장
지금까지 지우와 민서는 도윤과 함께 보장의 빈틈을 하나씩 찾아왔다. 진단비를 넓히고(9장), 정기보험 규모를 정하고(10장), 사회보험이 이미 막아 주는 몫을 뺐다(13장). 이제 "어디서 가입할 것인가"가 남았다. 이 장의 도구로 그 질문을 따져 본다.
"정기보험은 다이렉트가 더 쌀 수 있어"
도윤은 지우의 대학 동기다. 처음 만났을 때 둘이 정한 약속은 "분석 먼저, 판매는 나중"이었다(1장). 도윤은 그 약속에 하나를 더 붙였다. 친구라서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를 스스로 경계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은 늘 지우네가 가진 계약의 분석으로 시작했고, 가입 여부는 설계서를 집에 가져가 하루 이상 생각한 뒤 지우네가 정하기로 했다. 지인 계약일수록 해지되면 관계까지 상한다는 것을 도윤은 3년 동안 여러 번 봤다.
정기보험 이야기가 나오자 도윤이 먼저 말했다. "정기보험은 구조가 단순해서 다이렉트(CM) 상품이 더 쌀 수 있어." 이 책의 채널 모델로 계산하면 32세 남성 정기보험 3억원(60세 만기)은 대면 상품 월 약 4.2만원, CM 상품 월 약 3.7만원으로, 28년 납입이면 누적 차이가 약 169만원이다. 도윤은 두 견적을 나란히 놓고, CM으로 가입한다면 고지 항목만 함께 읽어 보자고 했다. 민서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럼 도윤 씨는 뭘로 돈을 벌어요?" 도윤의 답은 이랬다. "제가 값을 하는 곳은 따로 있어요. 서랍 전체를 분석하고, 진단비처럼 회사마다 정의가 다른 상품을 비교해서 조합하고, 갱신과 실손 전환을 챙기고, 나중에 청구할 때 옆에 있는 거요."
지우는 이 장의 시뮬레이터를 떠올렸다. 시간 가치가 크고 보험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맡기는 쪽이 낫고, 단순한 상품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면 직접 사는 쪽이 낫다. 지우네의 결론은 둘을 나누는 것이었다. 비교가 어려운 진단비 보강과 전체 설계는 도윤에게 맡기고, 정기보험은 대면과 CM 견적을 비교해 고른다. 도윤은 고객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20년 동안 보험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낼 사람이 되었다.
핵심 정리
- 사람들은 드문 위험을 작게 느끼고(확률 체감), 미래의 이득을 깎고(현재 편향), 결정을 미룬다. 그래서 형편이 되는 사람도 보장 없이 큰 병을 만나는 보장 공백이 생긴다. 판매는 이 공백과 역선택을 함께 줄인다.
- 상품을 직접 비교하는 데는 시간과 이해 비용이 든다. 시간이 귀하고 보험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맡기는 쪽이, 보험을 잘 알고 시간이 있는 사람에게는 직접 고르는 쪽이 대개 낫다.
- 같은 상품은 어느 설계사에게 사도 보험료가 같다. 채널별 가격 차이는 채널 전용 상품의 사업비 차이에서 온다. 젊은 사람의 순수 보장성 상품에서 다이렉트가 싸지는 경향이 크고, 대신 판단과 고지의 책임이 가입자에게 넘어온다.
- 설계사의 가치는 니즈 환기·설계·계약 관리·청구 지원이다. 수수료는 판매 시점에 몰리고 가치는 나중에 드러나는 어긋남이 있다.
- 보험 상담은 써 본 뒤에도 품질을 알기 어려운 신뢰재다. 수수료 구조가 만드는 이해상충은 평판(정보 공개·소개), 감독(판매 원칙·제재), 수수료 구조 개편이 함께 막는다.
- 좋은 설계사는 e-클린보험서비스로 이력을 확인하고, 기존 보험 분석부터 하는지, 비교 근거를 보여 주는지로 고른다. 승환 권유, 절판 마케팅, '무조건 이득', 고지 생략 권유는 경고 신호다.
- 설계사는 위촉된 개인 사업자이고 생명·손해·제3보험 자격(변액은 별도)이 필요하다. 초기 이탈이 많아 13월차 정착률이 낮은 편이며, 떠난 설계사의 계약은 고아계약이 된다.
확인 퀴즈
보험료를 낼 형편이 되는 사람도 스스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로 이 장의 설명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같은 보험회사의 같은 상품을 전속설계사에게 가입할 때와 GA 소속 설계사에게 가입할 때 보험료는?
보험 상담이 '신뢰재'라는 말의 뜻으로 알맞은 것은?
설계사가 "지금 보험은 다 해지하고 새 상품으로 갈아타면 보장이 훨씬 좋아요"라고 권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