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왜 이렇게 복잡한가
지우가 서랍의 증권을 모두 꺼내 특약을 세어 봤다. 서른 개를 넘기자 세는 것을 그만뒀다. 이름은 비슷한데 금액이 다르고, 같은 "암 3,000만원"인데 두 회사 설계서의 작은 글씨가 다르다. 휴대폰 요금제보다 복잡한 상품을 왜 평생 들고 있어야 할까. 이 장은 이 책 전체의 질문 하나를 정면으로 다룬다. 보험의 복잡함은 어디서 오는가. 그중 어떤 것은 위험 자체가 복잡해서 생긴 필요한 복잡함이고, 어떤 것은 파는 쪽에 유리해서 살아남은 복잡함이다. 둘을 가려 보는 것이 이 장의 목표다.
- 보험 한 장에 겹친 차원을 세고, 특약을 하나 더할 때마다 설계의 가짓수가 곱으로 늘어나는 것을 본다.
- 총액이 비슷한 두 묶음 중 어느 것이 더 싸게 산 것인지 맞혀 보고, 묶음이 가격 비교를 어렵게 만드는 원리를 안다.
- 뇌출혈·뇌졸중·뇌혈관질환, 급성심근경색·허혈성심장질환, 일반암·유사암의 정의 차이가 받을 확률을 몇 배 바꾸는지 계산한다.
- 복잡함의 다섯 원천을 나누고,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탐색 비용을 시뮬레이션한다.
- 복잡함을 줄이는 제도와 맞춤 설계라는 복잡함의 쓸모, 그 사이에서 설계사가 할 일을 정리한다.
보험 한 장에 들어 있는 차원들
휴대폰 요금제는 대체로 데이터, 통화, 가격의 세 숫자로 비교한다. 보험은 그렇지 않다. 같은 "건강보험" 한 장 안에도 서로 독립적으로 고를 수 있는 축이 여럿 겹쳐 있다. 무엇을 보장하는가(보장 종류), 얼마를 주는가(금액), 언제까지 보장하는가(보장기간), 언제까지 내는가(납입기간), 중간에 값이 바뀌는가(갱신형·비갱신형), 해지하면 얼마를 돌려주는가(표준형·저해지·무해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장마다 따로 붙이는 특약(Rider)이다. 특약은 주계약에 덧붙여 따로 고르는 보장이다.
곱하기가 얼마나 빨리 커지는지 직접 본다. 아래 카드 하나가 특약 하나다. 카드를 누를 때마다 금액이 바뀌고(꺼짐 → 금액1 → 금액2 → …), 오른쪽 위에 이 화면의 선택지로 만들 수 있는 설계의 가짓수가, 아래에 지금 고른 설계의 월 보험료가 나온다. 보험료는 32세 남성을 기준으로 이 책의 엔진으로 계산한다.
특약 조합의 폭발
특약을 하나 더할 때마다 가짓수가 몇 배씩 늘어난다. 특약 m개가 각각 \(k_i\)가지 선택지를 가지면 설계의 수는 이렇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똑같은 설계를 두 회사에서 받아 비교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 설계사가 가져온 두 장의 설계서는 거의 확실히 서로 다른 조합이고, 그래서 총액만 보고는 무엇이 싼지 말할 수 없다.
묶음 판매가 비교를 어렵게 만드는 원리
마트에서 라면 다섯 개 묶음과 낱개의 값을 비교하는 일은 쉽다. 단위 가격(1개당)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보험의 단위 가격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진단비 1,000만원의 보험료가 1만원이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싼지 비싼지는 그 진단을 받을 확률을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보험의 공정한 단가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아래는 총액이 비슷한 두 묶음이다. 왼쪽은 A생명, 오른쪽은 B손해보험이 낸 설계서다. 설계서에 적힌 대로 보장, 금액, 특약별 보험료만 보고 어느 쪽이 "더 싸게 산 것"인지 먼저 골라 본다. 그다음 "답 보기"를 누르면 이 책의 엔진으로 계산한 공정 보험료 대비 각 특약의 값(단가 지수)과 묶음 전체의 환원율이 드러난다.
어느 묶음이 더 싸게 산 것인가
총액이 비슷한 두 설계서는 보통 "어떤 특약은 싸게, 어떤 특약은 비싸게" 섞여 있다. 묶음은 그 차이를 평균 속에 감춘다. 가입자가 비교하는 것은 총액과 보장의 이름이고, 이름이 비슷하면 같은 것으로 보기 쉽다. 그 틈에서 회사는 사람들이 잘 따지지 않는 특약에 더 많은 마진을 붙일 수 있다. 이것은 보험만의 일이 아니다. 통신 결합 상품이나 자동차 옵션 패키지처럼 여러 상품을 묶어 파는 시장에서 반복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같은 이름, 다른 정의
"뇌 질환을 보장한다"는 설계서의 말은 적어도 세 가지 다른 계약을 뜻할 수 있다. 보험금을 주는 조건, 즉 지급 사유는 질병분류 코드의 범위로 정해지는데, 그 범위가 보장마다 다르다. 뇌출혈은 뇌졸중의 일부이고, 뇌졸중은 뇌혈관질환의 일부다. 심장도 마찬가지로 급성심근경색은 허혈성심장질환의 일부다.
범위가 다르면 받을 확률은 얼마나 다를까. 아래 막대는 이 책의 교육용 발생률로 계산한, 지금 가입한 사람이 만기까지 살아 있는 동안 그 진단을 처음 받을 확률이다. 막대 오른쪽 숫자는 그 보장 1,000만원의 월 보험료다. 나이와 성별, 만기를 바꿔 본다.
정의가 넓으면 몇 배 더 받나
여기서 두 가지를 기억한다. 첫째, 좁은 정의의 보장이 싼 것은 할인이 아니라 받을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뇌 보장 1,000만원이 월 2천원"이라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뇌 질환이면 1,000만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둘째, 넓은 정의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뇌혈관질환 진단비는 가벼운 진단에도 지급되는 만큼 비싸다. 목적이 큰 병의 소득 공백을 메우는 것이라면 어떤 범위가 필요한지는 9장에서 따진다.
암도, 수술도 이름이 같지 않다
암 진단비 역시 하나가 아니다. 많은 상품이 암을 몇 갈래로 나누고 갈래마다 다른 금액을 준다. 갑상선암·기타피부암·제자리암·경계성종양은 흔히 유사암으로 묶여 일반암 진단비의 10~20% 정도만 받는다. 상품에 따라 전립선암·유방암 등을 소액암으로 따로 줄이거나, 치료비가 큰 일부 암을 고액암으로 더 주기도 한다. 어디에 넣는지는 약관마다 다르다.
수술비도 비슷하다. 오래된 상품은 수술을 1종부터 5종까지 난이도별로 나누어 종마다 다른 금액을 주는 방식이 많고, 요즘 상품은 "N대 수술", "N대 질병 수술"처럼 특정 질병이나 수술 목록을 정해 그 목록에 들 때만 주는 방식이 많다. 목록의 이름이 크게 들려도 실제로 내가 받을 수술이 목록에 있는지는 약관의 별표를 봐야 안다.
정의 차이가 실제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계약 두 개로 확인한다. 둘 다 설계서 첫 줄에는 "암 진단 3,000만원"이라고 적혀 있다. 계약 X는 지우가 2020년에 든 암보험을 단순화한 것이고, 계약 Y는 가상의 B손해보험 비교안이다. 암의 종류를 고르고, 시간표의 점을 끌어 가입 후 언제 진단받는지 바꿔 본다.
같은 "암 3,000만원", 두 계약이 주는 돈
계약 Y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감액이 없고 분류가 넓은 만큼 같은 조건이면 보험료가 더 비쌀 것이다. 요점은 설계서 첫 줄만으로는 두 계약이 같은 상품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차이는 정의, 분류표, 감액·면책 조건에 숨어 있고, 그것들은 약관 뒤쪽에 있다. 약관을 읽는 구체적인 방법은 6장에서 다룬다.
복잡함의 다섯 원천
지금까지 본 복잡함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보험의 복잡함을 다섯 원천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원천에서 나온 복잡함이 위험을 다루는 데 꼭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파는 쪽에 유리해서 살아남은 것인지를 따로 본다.
필요한 복잡함. 암과 교통사고와 사망은 일어나는 빈도도, 피해의 크기도, 피해의 모양도 다르다. 이것들을 한 가격에 묶을 수는 없으니 보장이 나뉜다(1). 4장에서 본 고지·심사·면책·자기부담은 정보 비대칭 아래에서 보험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장치다(2). 이 두 칸의 복잡함을 걷어 내면 보험은 더 단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비싸지거나 사라진다.
섞여 있는 복잡함. 수십 년짜리 계약이라 보험료를 평준화하고 준비금을 쌓아야 하고, 그 결과 해지환급금이라는 개념이 생긴다(3).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규제와 세제 혜택도 조건과 서류를 만든다(4). 둘 다 필요해서 생겼지만, 판매 현장에서는 "해지하면 손해", "10년 유지하면 비과세" 같은 말로 판매 논리가 되기도 한다.
판매가 남긴 복잡함. 회사들은 비슷한 보장을 조금씩 다른 이름과 조건으로 내놓아 차별화한다. 소비자는 차이를 비교하기 어렵고, 비교가 어려운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이 약해진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일부러 비교를 어렵게 만들어 이익을 지키는 시장을 혼란(confusion)과 독점(monopoly)을 합쳐 컨퓨저폴리(Confusopoly)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공정하게 말하면, 새로운 보장을 만드는 혁신과 비교를 피하려는 차별화는 겉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새 특약이 정말 새로운 위험을 덮는지, 기존 보장을 이름만 바꿔 쪼갠 것인지는 하나씩 따져야 한다.
"비교가 어려우면 왜 나쁜가"를 숫자로 본다. 보험 상품이 N개 있고, 각 상품의 진짜 가치(같은 보험료로 얻는 보장의 값)는 서로 다르다. 소비자는 시간과 지식이 한정되어 그중 몇 개만 자세히 살펴보고, 살펴본 것 중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고른다. 그런데 상품이 복잡할수록 "좋아 보이는 것"과 "진짜 좋은 것"이 어긋난다. 아래에서 1,000명의 소비자가 쇼핑하는 장면을 돌린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나빠지는 선택
선택지가 많은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시장의 최선은 분명 좋아진다. 문제는 그 최선에 닿을 수 있느냐다. 비교가 쉬우면 선택지가 늘수록 소비자가 이득을 보고, 비교가 어려우면 선택지가 늘수록 놓치는 것만 커진다. 이 차이가 "탐색을 대신해 줄 사람"의 존재 이유 하나를 만든다. 동시에 탐색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면 그 이득은 사라진다. 이 긴장은 14장과 15장의 주제다.
복잡함을 줄이려는 장치
제도도 이 문제를 알고 있다. 한국의 보험 제도에는 비교를 쉽게 하고 어긋남을 줄이려는 장치가 여럿 있다. 시뮬레이터에서 "표준화·비교공시"를 켰을 때 일어난 일을 현실에서 하려는 것들이다.
| 장치 | 무엇을 줄이나 | 한계 |
|---|---|---|
| 표준약관 | 회사마다 다른 기본 조항(청약철회, 고지의무, 보험금 청구 절차 등)을 같은 문구로 맞춘다 | 상품별 특약과 지급 사유의 세부까지 맞추지는 못한다 |
| 표준화 실손보험 | 실손의료보험의 보장 구조를 회사와 상관없이 같게 만든다(2009년 이후) | 같은 세대 안에서는 비교가 쉽지만 세대 간 차이는 크다(8장) |
| 상품설명서·상품요약서 | 보장 내용, 보험료, 해지환급금, 유의사항을 정해진 형식으로 요약한다 | 분량이 많아 끝까지 읽는 사람이 적다 |
| 보험다모아 | 여러 회사의 단순한 상품(실손, 정기, 암, 자동차 등)의 보험료를 한곳에서 비교한다(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 운영) | 복잡한 특약 묶음은 비교 대상에서 빠지기 쉽다 |
| 협회 비교공시 | 상품별 보험료, 사업비 수준, 공시이율 등을 공개한다 | 찾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 |
| 내보험다보여 | 내가 가입한 모든 보험 계약을 한 화면에서 조회한다(한국신용정보원) | 계약 목록은 보여 주지만 보장의 겹침·빈칸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
| 쉬운 약관·설명의무 | 약관 문구를 쉽게 쓰게 하고, 판매자가 중요 사항을 설명하고 확인받게 한다 | 설명을 들었다는 서명과 이해한 것은 다르다 |
이 장치들의 공통점은 "같은 것을 같은 모양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정의가 같으면 단가를 비교할 수 있고, 형식이 같으면 차이가 보인다. 반대로 장치가 닿지 않는 곳, 즉 특약 묶음의 구성과 세부 정의에는 여전히 복잡함이 남는다. 실손보험이 표준화된 뒤 실손 보험료 비교가 쉬워진 것과, 진단비·수술비 특약 묶음은 여전히 비교가 어려운 것을 나란히 놓으면 표준화의 힘과 한계가 함께 보인다.
복잡함의 쓸모: 맞춤 설계와 조언의 자리
복잡함을 모두 걷어 낸 보험을 상상해 본다. 모든 사람이 같은 묶음 하나를 같은 값에 산다. 비교는 쉽다. 그러나 1인 가구 사회초년생과 아이 둘을 키우는 외벌이 가장은 필요한 것이 다르다. 한쪽에는 사망보장이 거의 필요 없고, 다른 쪽에는 가장 중요하다. 한 가지 묶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과잉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공백이다. 복잡함은 맞춤을 가능하게 하는 값이기도 하다.
아래는 같은 월 예산으로 "누구에게나 같은 표준 묶음"을 산 경우와, 그 가구의 필요에 맞춰 보장을 고른 경우를 비교한다. 막대는 보장 영역마다 필요한 만큼 채운 비율이다. 가구와 예산을 바꾸고, 마지막 체크를 켜서 맞춤 설계가 판매자의 이익 쪽으로 기울면 어떻게 되는지도 본다.
표준 묶음 vs 맞춤 설계
맞춤 설계는 복잡함이 주는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받으려면 복잡함을 대신 헤쳐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조언자, 현장에서는 보험설계사가 가치를 만드는 자리다. 필요를 묻고, 수백 경우의 수에서 그 가구에 맞는 몇 개를 고르고, 같은 이름 다른 정의를 가려 주는 일이다. 동시에 시뮬레이터의 ③처럼, 복잡함은 조언자가 고객 대신 자기 이익을 고르기도 쉽게 만든다. 고객이 비교할 수 없는 곳에서는 기울어도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설계사가 왜 존재하고, 그 가치와 이해상충을 어떻게 다룰지는 14장에서 이어진다.
지우 서랍의 특약을 세다
지우와 도윤이 서랍의 증권을 펼쳐 놓고 담보(보장 항목)를 하나씩 셌다. 주계약과 특약, 자동차보험의 담보까지 모두 센 결과다. 담보의 이름과 구성은 가상의 예시다.
| 계약 | 담보 예 | 개수 |
|---|---|---|
| 종신보험(2012) | 사망 1억원(주계약), 재해사망, 재해장해, 재해골절, 질병입원일당, 재해입원일당, 수술(1~5종), 중환자실입원 | 8 |
| 실손의료보험(2세대) | 질병입원, 질병통원, 상해입원, 상해통원 | 4 |
| 암보험(갱신형, 2020) | 암 진단 3,000만원, 유사암 300만원, 암 수술, 암 입원일당, 항암방사선치료, 뇌출혈 진단 1,000만원, 급성심근경색 진단 1,000만원, 질병수술, 질병입원일당 | 9 |
| 운전자보험(2023) | 교통사고처리지원금, 벌금(대인), 벌금(대물), 변호사선임비용, 자동차사고부상, 면허정지위로금, 일상생활배상책임 | 7 |
| 주택화재보험(2025) | 가재도구 화재손해, 임차자 화재배상책임, 화재벌금, 급배수설비 누출손해, 일상생활배상책임 | 5 |
| 자동차보험 | 대인배상Ⅰ·Ⅱ, 대물배상, 자기신체사고, 무보험차상해, 자기차량손해, 긴급출동 | 7 |
| 지우 몫 합계 | 40 | |
마흔 개의 담보를 한 장으로
지우 몫만 담보가 40개였다. 민서의 실손과 단체보험까지 더하면 더 많다. 지우는 "이렇게 많은데 왜 늘 뭔가 빠진 것 같지?"라고 물었다. 도윤의 답은 "많은 것과 맞는 것은 다르다"였다. 40개를 영역별로 다시 모으니 같은 영역이 여러 계약에 흩어져 있었다. 수술비와 입원일당은 종신보험과 암보험 양쪽에, 일상생활배상책임은 운전자보험과 화재보험 양쪽에 있었다. 반대로 뇌와 심장은 가장 좁은 정의(뇌출혈, 급성심근경색)만 있었다.
같은 "암 3,000만원"도 따져 봤다. 지우의 암보험은 1년 안에 진단되면 50%를 주고, 갑상선암은 유사암으로 300만원만 준다. 도윤이 다른 회사 상품으로 뽑아 본 비교안은 감액이 없고 갑상선암을 600만원 주는 대신 보험료가 달랐다. 도윤은 여기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 계약을 바꾸면 새 면책·감액이 다시 시작되고(4장), 갱신 때 보험료가 어떻게 되는지(7장)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도윤은 아래와 같은 한 장짜리 보장 요약표를 만들어 지우에게 건넸다.
| 영역 | 지금 있는 보장 | 메모 |
|---|---|---|
| 사망 | 1억원(종신, 2032년 납입 완료) | 아이 계획 후 다시 계산 |
| 암 | 3,000만원, 유사암 300만원(20년 갱신) | 1년 50% 감액, 46세 갱신 |
| 뇌·심장 | 뇌출혈 1,000만원, 급성심근경색 1,000만원 | 가장 좁은 정의만 |
| 실손 | 2세대 실손 | 세대 전환 여부 검토 |
| 수술·입원 정액 | 종신 특약 + 암보험 특약 | 두 계약에 겹침 |
| 배상책임 | 운전자보험 + 화재보험 | 두 계약에 겹침 |
| 운전·자동차 | 운전자보험, 자동차보험 | 자동차는 매년 갱신 |
| 소득 공백 | — | 빈칸 |
지우는 처음으로 자기 보험을 한 장으로 봤다. 서랍 속 40개는 머릿속에 남지 않지만 여덟 줄은 남는다. 도윤에게 이 표는 판매 도구가 아니라 상담의 출발점이다. 빈칸과 겹침 중 무엇을 먼저 다룰지는 표를 근거로 하나씩 정하기로 했다.
핵심 정리
- 보험 한 장에는 보장 종류·금액·보장기간·납입기간·갱신·환급형·특약의 차원이 겹쳐 있고, 설계의 가짓수는 선택지의 곱으로 늘어난다. 같은 설계를 두 곳에서 비교하는 일은 거의 없다.
- 보험의 단가는 보험료가 아니라 받을 확률에 비춘 값(환원율)으로 봐야 하는데, 설계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묶음은 특약별 가격 차이를 총액 속에 감춘다.
- 뇌출혈 ⊂ 뇌졸중 ⊂ 뇌혈관질환, 급성심근경색 ⊂ 허혈성심장질환. 이 책의 모델에서 32세 남성이 100세까지 뇌출혈 진단을 받을 확률은 약 7%, 뇌혈관질환은 약 57%다. 좁은 정의가 싼 것은 받을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 같은 "암 3,000만원"도 유사암·소액암 분류, 면책·감액 조건에 따라 받는 돈이 열 배까지 다를 수 있다.
- 복잡함의 원천은 위험의 다양성, 정보 비대칭, 장기 계약과 금리, 규제와 세제, 판매 경쟁이다. 앞의 둘은 필요한 복잡함, 마지막은 비교를 피하려는 판매가 남긴 복잡함에 가깝다.
- 비교가 어려운 시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수록 시장의 최선과 소비자의 선택 사이의 간격이 커진다. 표준약관, 표준화 실손, 상품요약서, 보험다모아, 내보험다보여가 이 간격을 줄이려는 장치다.
- 복잡함은 맞춤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조언자는 그 복잡함을 대신 헤쳐 가치를 만들지만, 비교할 수 없는 곳에서는 자기 이익 쪽으로 기울기도 쉽다.
확인 퀴즈
보장기간 3가지, 납입기간 3가지, 환급형 2가지에 특약 10개가 각각 "꺼짐 포함 4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만들 수 있는 설계의 수는?
"뇌 보장 1,000만원이 월 2천원밖에 안 한다"는 설계서를 받았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다음 중 "판매가 남긴 복잡함"에 가장 가까운 것은?
상품이 복잡해 겉보기 가치와 진짜 가치가 크게 어긋나는 시장에서 상품 수가 늘어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