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과 실손보험
맹장 수술로 사흘 입원하고 퇴원하는 날, 수납 창구에서 받은 영수증에는 숫자가 빼곡하다. 총 진료비, 공단부담금, 본인부담금, 전액본인부담, 비급여. 그리고 며칠 뒤 실손보험에서 들어온 보험금은 낸 돈보다 조금 적다. 같은 수술인데 옆 침대 환자는 거의 다 돌려받았다고 한다. 이 장은 병원비 한 장이 어떤 길로 나뉘는지, 국민건강보험이 이미 얼마나 막아 주는지, 그 위에 얹는 실손보험이 왜 가입 시기(세대)마다 다르게 돌려주는지를 직접 숫자를 바꿔 가며 따라간다.
- 총 진료비가 공단 부담, 급여 본인부담, 비급여로 나뉘는 길을 따라가고, 진료받는 곳에 따라 본인부담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본다.
- 본인부담상한제와 산정특례가 큰 병의 급여 본인부담을 어디까지 묶어 주는지, 그리고 비급여는 왜 그 바깥에 남는지 확인한다.
- 실손보험 1~5세대의 자기부담 구조를 같은 입원 한 건으로 비교한다.
- 오래된 실손을 유지할지 새 세대로 바꿀지를 평생 보험료와 기대 자기부담의 저울로 따져 본다.
- 실손 중복 가입이 왜 보험료만 두 배로 만드는지, 단체실손이 있을 때 개인실손을 멈추는 제도는 어떻게 쓰는지 익힌다.
병원비 한 장은 세 갈래로 나뉜다
한국에 사는 사람은 거의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보험 하나에 들어 있다. 국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이다. 직장인은 월급에서, 자영업자는 소득과 재산에 따라 보험료를 내고, 병원에 가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진료비의 상당 부분을 대신 낸다. 그래서 영수증의 첫 줄인 총 진료비는 내가 낼 돈이 아니다. 내가 낼 돈은 그 아래에서 몇 번 갈라진 뒤에야 정해진다.
첫 번째 갈림길은 급여(Covered service)와 비급여(Non-covered service)다. 급여는 건강보험이 가격(수가)을 정해 두고 비용을 함께 내 주는 진료이고,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아 병원이 값을 정하고 환자가 전부 내는 진료다. 상급병실료 차액, 도수치료, 일부 MRI·초음파, 신의료기술, 일부 주사제가 대표적인 비급여다. 두 번째 갈림길은 급여 안에서 일어난다. 급여 진료비 가운데 공단이 내는 몫(공단부담금)과 환자가 내는 몫(본인부담금(Copayment))으로 나뉜다. 환자가 내는 비율이 본인부담률이다.
본인부담률은 어디서 어떤 진료를 받느냐에 따라 다르다. 입원은 대체로 20%, 외래는 동네 의원이 30%이고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갈수록 40%, 50%, 60%로 오른다. 가벼운 병은 동네 의원에서, 큰 병은 큰 병원에서 보라는 신호를 가격으로 준 것이다(약값, 나이, 지역, 경증 여부에 따라 실제 비율은 더 다양하다). 그 비율을 바꿔 가며 영수증 한 장을 직접 나눠 본다. 아래에서 진료받는 곳을 고르고, 총 진료비와 비급여 비율을 바꾼다. 마지막 줄은 4세대 실손이 있을 때 실손을 지나고 남는 내 돈이다.
영수증 한 장 나누기
네 줄을 따라 내려오면 실손보험이 어디에 서 있는지 보인다. 실손은 총 진료비 전체를 보장하는 보험이 아니다. 공단이 내고 남은 본인부담과 비급여, 즉 영수증의 가장 아래 칸만 다룬다. 그래서 같은 실손이라도 건강보험이 많이 내 주는 급여 진료에서는 할 일이 적고, 비급여가 많은 진료에서는 할 일이 많다. 실손의 보험료가 비급여 이용량에 따라 출렁이는 이유가 여기서 시작된다.
| 진료 | 본인부담률(대표값) | 메모 |
|---|---|---|
| 입원 | 20% | 식대·상급병실 등은 별도 기준 |
| 외래 · 의원 | 30% | 65세 이상 소액 진료는 정액·감면 규정이 따로 있다 |
| 외래 · 병원 | 40% | 지역(동·읍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
| 외래 · 종합병원 | 50% | |
| 외래 · 상급종합병원 | 60% | 진찰료는 전액 본인부담인 경우가 많다 |
| 산정특례(암·중증 심장·뇌혈관·중증화상) | 5% | 등록 기간 동안 해당 질환 진료에 적용 |
| 산정특례(희귀·중증난치질환) | 10% | 질환별 기준이 다르다 |
영수증에서 자주 헷갈리는 칸
실제 진료비 영수증은 위의 세 갈래보다 칸이 많다. 실손 청구와 상한제 계산에서 결과가 달라지는 칸만 골라 보면 이렇다. 아래는 입원 영수증 한 장을 단순화한 예시다.
- 일부본인부담: 앞에서 본 본인부담률만큼 내는 급여 본인부담이다. 본인부담상한제의 합계에 들어간다.
- 전액본인부담: 급여 항목이지만 기준을 벗어나 환자가 전부 내는 부분이다(예: 정해진 횟수를 넘은 검사). 급여 칸에 있어도 상한제 합계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고, 실손에서는 상품에 따라 급여 또는 비급여처럼 다뤄진다.
- 상급병실료 차액: 1~3인실 같은 상급병실을 쓸 때 기본 입원료와의 차이다. 상한제에 들어가지 않고, 실손도 대개 일부만 보장한다(3·4세대는 차액의 50%, 1일 한도가 있다).
- 선별급여: 효과 대비 비용이 아직 확실하지 않아 본인부담률을 50~90%로 높게 매긴 급여다. 상한제에서 빠진다.
이 칸들은 해마다 기준이 조금씩 바뀌고 병원마다 표기도 다르다. 큰 금액이 나왔다면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서를 함께 받아 두면 실손 청구와 상한제 확인이 쉬워진다. 비급여 항목이 과하게 청구되었다고 생각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확인 서비스로 적정 여부를 물어볼 수 있다.
본인부담상한제와 산정특례: 큰 병의 바닥
앞 시뮬레이터는 진료 한 건이었다. 큰 병은 한 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항암 치료처럼 몇 달씩 입원과 외래가 이어지면 급여 본인부담도 달마다 쌓인다. 여기에 건강보험이 걸어 둔 두 개의 안전판이 있다.
- 본인부담상한제(Out-of-pocket ceiling): 1년(1월~12월) 동안 낸 상한제 적용 대상 급여 본인부담의 합계가 소득 수준별 상한액을 넘으면, 넘은 만큼을 공단이 돌려준다. 상한액은 소득 하위 1분위가 90만원, 최상위 10분위가 843만원이다(2026년 일반 상한액, 요양병원 120일 초과 입원은 별도 상한).
- 산정특례(Special copayment scheme): 암, 중증 심장·뇌혈관 질환, 중증화상, 희귀·중증난치질환으로 등록되면 그 질환 진료의 급여 본인부담률을 5~10%로 낮춘다. 암은 등록 뒤 약 5년간 적용된다.
아래는 1년 내내 치료가 이어지는 큰 병이다. 달마다 같은 진료비가 나온다고 보고, 시간이 흐르며 쌓이는 본인부담을 그린다. 소득분위와 월 진료비, 비급여 비율을 바꾸고 산정특례를 켜고 꺼 본다. 그래프는 1월부터 12월까지 저절로 흐른다.
1년 동안 쌓이는 본인부담과 상한선
주황 선이 상한에서 꺾이는 모습이 건강보험의 진짜 힘이다. 소득 7분위 가구라면 1년 동안 아무리 많은 급여 진료를 받아도 급여 본인부담은 326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빨간 선은 꺾이지 않는다. 비급여는 상한제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큰 병의 병원비가 무서운 정도는 결국 비급여를 얼마나 쓰느냐로 정해진다. 실손보험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실손보험이 가장 많이 다투는 지점이 둘 다 이 빨간 선이다.
실손보험: 건강보험의 빈틈을 메우는 보험
실손의료보험(Indemnity health insurance), 줄여서 실손은 실제로 낸 의료비를 돌려주는 보험이다. 진단받으면 정해진 금액을 주는 진단비(9장)와 달리, 영수증에 찍힌 본인부담과 비급여에서 자기부담을 뺀 만큼을 준다. 손해를 본 만큼만 메운다는 실손보상 원칙의 보험이라, 여러 개에 들어도 낸 돈보다 더 받을 수 없다. 가입자가 많아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도 불린다.
실손은 언제 가입했느냐에 따라 구조가 크게 다르다. 보험업계는 이것을 세대로 부른다. 처음에는 회사마다 제각각이던 상품을 2009년 10월에 표준화했고(2세대), 그 뒤 보험료가 계속 오르자 자기부담을 늘리고 과잉 진료가 잦은 항목을 따로 떼어 내는 개편이 이어졌다(3·4세대). 5세대는 2026년 5월 6일 출시되어 중증 비급여 보장을 강화하고 비중증 비급여 자기부담을 늘렸다.
| 세대 | 판매 시기 | 입원 자기부담(급여/비급여) | 외래 공제 | 갱신·재가입 | 보험료 배수(교육용) |
|---|---|---|---|---|---|
| 1세대 | ~2009.9 | 0% / 0% | 5천원 안팎 | 3·5년 갱신(상품마다 다름) | 3.2 |
| 2세대 | 2009.10~2017.3 | 10% / 10% | 1만원~ | 1~3년 갱신, 2013년 4월 이후 가입분은 15년 재가입 | 2.2 |
| 3세대 | 2017.4~2021.6 | 10% / 20% | 1만원 또는 20% | 1년 갱신, 15년 재가입 | 1.4 |
| 4세대 | 2021.7~ | 20% / 30% | 급여: 20%·1/2만원 중 최대 비급여: 30%·3만원 중 최대 | 1년 갱신, 5년 재가입 | 1.0 |
| 5세대 | 2026.5.6~ | 20% / 30%(중증)·50%(비중증) | 급여: 건보율·20%·1/2만원 중 최대 비급여: 중증 30%·3만원, 비중증 50%·5만원 중 최대 | 1년 갱신, 5년 재가입 | 0.7 |
표의 자기부담은 대표 상품을 단순화한 값이다. 2세대 후기 가입분에는 자기부담 20%를 고르는 상품도 있었고, 3세대는 도수치료·체외충격파·증식치료,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를 특약으로 떼어 자기부담 30%를 매겼다. 보험료 배수는 이 책의 엔진이 같은 나이의 4세대를 1로 놓고 쓰는 교육용 값이다. 실제 보험료는 회사, 나이, 성별, 갱신 이력에 따라 크게 다르다.
세대마다 무엇이 달라지는지는 표보다 같은 영수증 하나로 보는 편이 빠르다. 아래에서 입원 한 건(또는 의원 외래 한 번)의 진료비와 비급여 비율을 정하면, 실손이 없는 경우부터 5세대까지 여섯 줄로 실손 보험금과 내 돈이 나뉜다. 오른쪽 숫자는 32세 남자의 월 보험료(교육용 모델)다.
같은 입원, 다른 세대
여섯 줄을 나란히 놓으면 세대 개편이 무엇을 바꿨는지 한눈에 보인다. 비중증 비급여에서는 뒤 세대로 갈수록 자기부담이 늘지만, 5세대의 중증 입원 상한 때문에 모든 진료에서 이 순서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대신 보험료는 1세대가 4세대의 세 배가 넘는다(교육용 모델). 실손 개편은 늘 같은 교환이다. 자기부담을 늘려 보험료를 낮추고, 자주 쓰는 작은 진료보다 드물고 큰 진료를 보장한다. 2장에서 본 "드물고 큰 위험만 이전한다"는 원칙 쪽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일이다. 동시에 비급여 이용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같은 보험료를 내던 구조를 고쳐, 많이 쓰는 사람이 더 내게 하려는 일이기도 하다.
세대 전환의 저울: 오래된 실손을 지킬까, 바꿀까
보험사는 오래된 실손 가입자에게 4세대로 바꾸라는 안내를 자주 보낸다. 보험료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문구와 함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기부담도 늘어난다. 전환이 이득인지는 앞으로 낼 보험료의 합과 앞으로 낼 자기부담의 합을 함께 놓아야 알 수 있다. 실손 보험료는 나이가 들수록 오르고, 의료 이용도 나이와 함께 늘어나니 둘 다 평생에 걸쳐 따져야 한다.
아래 그래프는 32세 남자가 2세대 실손을 유지할 때와 지금 4세대로 바꿀 때, 그리고 실손이 아예 없을 때의 누적 비용(보험료 + 기대 자기부담)이다. 의료 이용량은 평범한 사람을 1로 놓은 배수이고, 비급여 비중을 함께 정한다. 그래프 위를 좌우로 끌어 몇 살까지의 합을 볼지 고른다. 큰 입원 한 번을 켜면 48세에 3,000만원짜리 입원(비급여 40%)이 한 번 끼어든다.
2세대 유지 vs 4세대 전환: 누적 비용
저울이 기우는 방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모델에서 평범한 이용량이면 4세대 전환이 평생 보험료를 크게 아낀다. 하지만 병원을 자주 가거나, 비급여 치료를 꾸준히 받을 일이 있거나, 이미 지병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부담이 낮은 오래된 실손이 이긴다. 그리고 큰 사건 한 번이 생기면 차이는 순식간에 줄어든다. 그래서 세대 전환은 "보험료가 싸니까"가 아니라 아래 질문으로 판단한다.
- 전환이 맞는 쪽: 병원 이용이 적고 건강하다. 갱신 때마다 오르는 보험료가 부담스럽다. 비상금이 있어 자기부담 몇백만원을 감당할 수 있다. 보험료 차이를 꾸준히 모을 수 있다.
- 유지가 맞는 쪽: 지병이나 꾸준한 비급여 치료가 있다. 나이가 많아 의료 이용이 늘어날 시기다. 새로 가입하면 심사에서 거절·부담보가 붙을 수 있다(전환은 보통 무심사지만 새 가입은 아니다). 지금 계약에 재가입 주기가 없어 조건이 바뀌지 않는다.
- 되돌리기: 4세대로 계약을 전환한 뒤 일정 기간(약 6개월) 안에 보험금을 받은 적이 없으면 원래 계약으로 되돌릴 수 있게 한 특례가 있었다. 조건은 회사와 시기에 따라 다르므로 전환 전에 반드시 확인한다. 기간이 지나면 오래된 실손은 다시 살 수 없다.
4세대의 비급여 할인·할증
4세대 실손은 급여(주계약)와 비급여(특약)를 나누었다. 그리고 비급여 특약의 보험료를 가입자마다 다르게 매기는 장치를 붙였다. 직전 1년 동안 받은 비급여 보험금이 많으면 다음 해 비급여 특약 보험료가 오르고, 하나도 받지 않았으면 조금 내려간다. 자동차보험의 할인·할증과 같은 생각이다. 실제 적용은 데이터가 3년 쌓인 뒤인 2024년 7월부터 시작되었다.
| 직전 1년 비급여 보험금 | 등급 | 다음 해 비급여 특약 보험료 |
|---|---|---|
| 0원 | 1등급 | 할인(약 5% 안팎) |
| 100만원 미만 | 2등급 | 유지 |
| 100만원 이상 150만원 미만 | 3등급 | +100% |
| 15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 | 4등급 | +200% |
| 300만원 이상 | 5등급 | +300% |
할증은 비급여 특약에만 붙고 급여 주계약은 그대로다. 암 같은 산정특례 대상 질환이나 장기요양 1~2등급 판정을 받은 사람의 비급여 의료비는 할증 계산에서 빠진다. 꼭 필요한 중증 치료까지 벌주지 않으려는 장치다. 등급은 해마다 새로 매겨진다. 한 해 많이 받아 할증되어도 다음 해에 적게 받으면 다시 내려온다.
아래 계단에서 손잡이를 끌어 지난 1년 비급여 보험금을 바꿔 본다. 월 보험료 1.4만원 가운데 급여 주계약이 0.8만원, 비급여 특약이 0.6만원이라고 가정했다.
비급여 보험금과 다음 해 보험료의 계단
계단의 모서리가 중요하다. 99만원과 100만원은 1만원 차이지만 비급여 특약 보험료는 두 배가 된다. 그래서 4세대 가입자는 연말 무렵 비급여 치료 일정을 조정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고 할증이 무서워 필요한 치료를 미룰 일은 아니다. 할증은 다음 해 1년에만 붙고, 금액도 그해 받은 보험금보다 훨씬 작다. 계단은 적게 쓰는 사람의 보험료가 많이 쓰는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는 장치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
중복 가입과 비례보상, 개인실손 중지제도
실손은 실제 낸 돈만큼만 돌려주는 보험이다. 그러니 실손을 두 개 들면 보험료는 두 배를 내지만 보험금은 두 배가 되지 않는다. 두 회사가 같은 손해를 나눠 낼 뿐이다. 이것을 비례보상(Pro-rata contribution)이라 한다.
실손 중복은 생각보다 흔하다. 개인 실손이 있는데 회사가 단체보험으로 단체실손을 들어 주는 경우, 부모님이 어릴 때 들어 준 실손을 모른 채 하나 더 든 경우다. 보험사는 실손 가입 전에 다른 실손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단체실손은 회사가 계약자라 개인이 놓치기 쉽다. 아래에서 같은 4세대 실손 계약 수를 1개에서 3개로 늘려 본다.
실손이 두 개면 무엇이 두 배가 되나
보험금 막대의 높이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중복 실손은 보험료만 쌓는다. 그런데 회사가 단체실손을 들어 주는 직장인에게 개인실손을 해지하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단체실손은 퇴사하면 사라지고, 그때 나이와 병력으로 개인실손을 새로 들기는 어렵거나 비싸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풀려고 만든 것이 개인실손 중지제도다.
- 중지: 단체실손에 가입된 직장인은 개인실손(보통 1년 이상 유지한 계약)의 보험료 납입과 보장을 함께 멈출 수 있다. 멈춘 동안에는 단체실손이 보장한다.
- 재개: 퇴직 등으로 단체실손이 끝나면 일정 기간(약 1개월) 안에 신청해 개인실손을 다시 살린다. 이때 심사를 다시 받지 않는다. 다만 재개되는 상품은 그 시점에 판매 중인 실손이다. 1~3세대를 멈췄다가 재개하면 그때의 새 세대로 돌아온다.
- 전환: 반대로 단체실손을 오래(약 5년 이상) 유지한 사람이 퇴직하면 단체실손을 개인실손으로 바꿀 수 있는 연계 제도도 있다.
아래 그래프는 31세 여자가 4세대 개인실손을 그대로 낼 때와 단체실손이 있는 동안 멈췄다가 퇴직 후 재개할 때의 누적 보험료다. 위쪽 손잡이를 끌어 퇴직 나이를 바꾼다.
개인실손 중지와 재개
중지제도는 보험료를 아끼면서 퇴직 후의 보장을 지키는 방법이지만, 공짜는 아니다. 단체실손의 보장 범위가 개인실손보다 좁으면 그 차이만큼 보장이 비고, 재개할 때는 그 시점의 새 상품을 받아들여야 한다. 1~2세대처럼 다시 살 수 없는 오래된 실손이라면 멈추는 순간 그 조건을 포기하는 셈이다. 4세대 가입자처럼 재개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경우에 가장 깔끔하게 맞는다.
실손 손해율과 보험료 인상
실손 보험료는 갱신 때마다 오른다. 이유는 두 가지가 겹친다. 하나는 나이다. 나이가 들면 병원을 더 자주 가니, 같은 계약이라도 매년 한 살 많은 사람의 보험료를 낸다. 다른 하나는 손해율(Loss ratio)이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가운데 보험금으로 나간 비율이다. 비급여 진료가 늘어 보험금이 보험료보다 빠르게 늘면 손해율이 오르고, 보험사는 다음 해 보험료를 올리겠다고 신청한다. 보험사들은 실손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꾸준히 밝혀 왔고, 세대 개편도 결국 이 손해율을 낮추려는 시도였다.
손해율이 올라 보험료가 오르면 건강하고 병원에 잘 가지 않는 가입자가 먼저 해지하거나 새 세대로 옮긴다. 남은 사람의 평균 의료 이용이 높아지니 손해율은 다시 오른다. 4장에서 본 역선택의 나선이 오래된 세대 안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셈이다. 1·2세대 보험료가 특히 가파르게 오르는 이유이고, 앞 저울에서 "보험료가 실제로 더 가파르게 오르면 전환 쪽이 더 유리해진다"고 덧붙인 이유다. 손해율과 사업비, 보험사 이익의 관계는 16장에서 자세히 본다.
청구 전산화: 서류 사진 대신 실손24
실손은 가입자가 많은데도 소액 청구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병원에서 영수증과 세부내역서를 떼고, 사진을 찍어 보험사 앱에 올리는 일이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꾼 것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다. 가입자가 요청하면 병원이 진료 서류를 전자적으로 보험사에 보내고, 그 사이를 전송대행기관(보험개발원)이 잇는다. 가입자는 실손24 앱이나 웹에서 병원과 보험사를 고르고 청구를 요청한다.
전산화는 청구의 수고를 줄였을 뿐 보장 내용을 바꾸지는 않는다. 보험금을 줄지, 얼마를 줄지는 여전히 약관과 심사가 정한다. 소액이라 포기하던 청구가 늘면 보험사의 지급도 늘어 장기적으로 보험료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알아 둔다. 청구 소멸시효(3년), 심사와 분쟁 처리는 17장에서 다룬다.
지우네의 실손과 상한선
도윤은 지우네 서랍에서 실손 두 개(지우의 2세대, 민서의 4세대)와 민서 회사의 단체실손을 꺼내 이 장의 도구로 차례대로 따졌다. 숫자는 모두 이 책의 교육용 모델로 계산한 값이다.
2세대 실손을 지킬까, 민서의 실손은 멈출까
먼저 큰 병의 바닥부터 확인했다. 지우의 건강보험료로 가늠하면 소득 7분위 안팎이고, 그 상한은 326만원이다. 지우가 암으로 1년 내내 치료받아도 급여 본인부담은 산정특례(5%) 덕분에 그보다 작고, 상한을 넘더라도 326만원에서 멈춘다. 남는 위험은 비급여와 소득 공백이다. 지우는 "암이면 병원비가 수천만원"이라는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음은 지우의 2세대 실손이다. 도윤이 저울에 올려 보니, 평균적인 의료 이용이면 4세대로 바꿀 때 65세까지 누적 비용이 약 765만원 줄어든다(2,681만원 → 1,916만원). 대부분 보험료 차이다. 그런데 48세에 3,000만원짜리 큰 입원이 한 번 생기면 4세대의 내 돈이 약 432만원으로 2세대(약 156만원)보다 약 276만원 많다. 의료 이용이 평균의 두 배이고 비급여가 많으면 65세 누적에서도 2세대가 이긴다. 지우는 2012년 가입이라 15년 재가입 주기가 없는 계약이고, 한 번 바꾸면 다시 살 수 없다. 둘은 지금은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기준을 정했다. 모델에서 두 세대의 월 보험료 차이는 지금 약 1.4만원이고 50세 무렵 약 2.8만원으로 벌어진다. 갱신 안내문의 실제 차이가 그 수준에 이르거나, 갱신 인상률이 해마다 두 자릿수로 이어지면 다시 저울에 올린다. 도윤은 전환이든 유지든 자기 수수료에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도 말해 두었다.
민서는 4세대 개인실손(월 1.4만원)과 회사 단체실손이 겹쳐 있었다. 같은 입원에서 받는 보험금은 하나일 때와 같으니, 재직 중에는 월 1.4만원이 중복이다. 4세대는 재개해도 조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므로 개인실손 중지제도가 깔끔하게 맞는다. 다만 민서는 2~3년 안에 이직할 생각도 있다. 도윤은 단체실손의 보장 범위가 개인실손과 같은지 회사 담당자에게 확인하고, 퇴사하면 약 1개월 안에 재개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을 달력에 적어 두라고 했다. 민서는 중지 신청을 하기로 했다.
핵심 정리
- 총 진료비는 급여와 비급여로 나뉘고, 급여는 다시 공단 부담과 본인부담으로 나뉜다. 본인부담률은 입원 약 20%, 외래는 의원 30%에서 상급종합 60%까지 올라간다.
- 본인부담상한제는 1년 급여 본인부담 합계를 소득분위별 상한(90만~843만원)에서 묶는다. 산정특례는 암 등 중증 질환의 급여 본인부담을 5~10%로 낮춘다. 비급여는 둘 다의 바깥이다.
- 실손은 본인부담과 비급여에서 자기부담을 뺀 만큼을 돌려주는 실손보상 보험이다. 비중증 비급여에서는 뒤 세대로 갈수록 자기부담이 늘고 보험료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작은 외래보다 큰 입원을 보장하는 쪽으로 옮겨 왔다. 5세대는 2026년 5월 6일 출시되었고, 급여 외래 건보율 연동과 중증 비급여 입원 상한이 핵심 변화다.
- 세대 전환은 평생 보험료와 기대 자기부담을 함께 놓고 판단한다. 병원 이용이 적고 비상금이 있으면 전환이, 이용이 많거나 지병이 있으면 유지가 유리하다. 오래된 실손은 한 번 바꾸면 다시 살 수 없다.
- 4세대는 직전 1년 비급여 보험금에 따라 다음 해 비급여 특약 보험료를 할인하거나 최대 300% 할증한다. 산정특례 질환 등은 할증에서 빠진다.
- 실손을 여러 개 들면 보험료만 늘고 보험금은 비례보상으로 나뉜다. 단체실손이 있는 직장인은 개인실손 중지제도로 중복을 없애고 퇴직 후 무심사로 재개할 수 있다. 재개 상품은 그 시점에 판매 중인 실손이다.
- 실손 보험료는 나이와 손해율 때문에 오른다. 청구는 실손24로 전산화되어 병원급(2024년 10월)에서 의원·약국(2025년 10월)으로 단계적으로 넓어졌다.
확인 퀴즈
입원 총 진료비 500만원 가운데 비급여가 30%다. 입원 본인부담률 20%, 실손이 없다면 환자가 내는 돈은?
본인부담상한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같은 구조의 실손보험 두 개에 가입한 사람이 입원해 실손 한 개 기준 보험금이 100만원인 진료를 받았다. 어떻게 되는가?
5세대 실손보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정확한 것은?